좋든 안 좋든 의사 고시와 관련한 대중들의 관심이 이만큼 높았던 적이 또 있을까.
현행 의사고시는 한국 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에서 관리하며, 실기시험과 필기시험으로 이루어진다. 한해 배출되는 의사의 수는 약 3500명 수준. 한의사나 치과의사를 제외하고, 매년 3000여명이 넘는데, 동시에 실기시험을 치를 수는 없다. 국시원이라고 불리는 건물에 여러개의 표준화된 방과 그 안에 훈련받은 배우들, 실기시험 도구들이 갖춰져 있고, 조별로 편성된 시험인원이 그 방을 순환하면서 시험을 치게 된다. 의과대학 교육환경과 술기 수준을 국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시행하는 OSCE와 CPX 시험이다.
3000여명이 동시에 시험을 칠 수도, 채점을 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의사실기 시험은 일정기간 동안, 국시원에 날짜를 지정하여 시험에 참여한다. 세간에는 선발대 후발대 시간차 컨닝처럼 자극적인 말들로, 의사시험을 마치 비리의 온상 처럼 보여지게 만들고 있지만, 사실 의사고시 실기 시험은 운전면허 실기 시험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미, 어떤 코스가 있는지 뻔히 알 수있고, 해당 술기를 어떻게 해야하는지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그리고 각 학교에서 실기시험 일정에 맞춰서 연습을 한다.
선발대와 후발대가 있는 이유는, 실기시험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있고, 다소 자신이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 생각한다. 실기를 먼저 끝내버리고, 편하게 필기 시험을 준비할 것인가, 아니면, 실기시험을 천천히 치면서 본과 4학년의 여유를 좀 즐길 것인가. 이미 표준화된 술기 내역과 표준화된 환자 케이스를 알고 있는데, 컨닝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해당 문제풀에서 어떤 케이스가 출제될지는 어제 오늘이 다르고, 오전 오후가 다른데.. 시험을 치고와서 해당 문제를 복기하는건 사실 시험 후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운전면허 장내 실기시험을 치고와서 '노란줄에 어깨를 맞추고 핸들을 돌리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컨닝일까.
누군가는 병원을 지켜야 하기에, 누군가는 있어야 하기에 젊은 의사들이 수련이란 이름으로 그 자리를 메꿔오고 있다. 어차피 1년이니까, 어차피 4년이니까, 이건 지나가니까, 그래 이 다음엔 좋은 날들이 있을꺼야 하면서, 꾸역 꾸역 일주일에 100시간이 넘는 노동을 감내해왔던 시간들이, 이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핵심적인 일을, 중요한 일을 할수록 올가미가 된다는 것을, 적절한 보상도, 적당한 존중조차도 없는 것을 알게된 오늘. 더 이상 바이탈의 길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그 빈자리를 체감하게 될 것이라 본다.
파업의 좌초이후 바이탈 파트의 많은 젊은 의사들이 수련을 포기 했다.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정부가 쥐어준 빨간 알약 덕분에, 현실에 눈 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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