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인턴다이어리

인턴 일기

GAP 2010. 10. 9.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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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때 이미 다짐 했었다. 신세한탄 하지 않기로, 내가 가진 것들에 감사하기로, 굳세게 내가 받은 것들을 돌려주기로. 그래서 였는지, 간혹 오프가 되어 6시간의 자유를 허가 받으면, 잠깐 자유롭게 컴퓨터 앞에 앉더라도, 안부라도 한글자 써보고자 해도 쉽사리, 말머리를 꺼낼 수가 없었다. 말머리를 꺼내고 나면, 지금의 이 고통을 나만 경험하는 고통의 일부로 여길 것 같아서. 나보다 평생을 힘든 상황에서 버텨내는 사람들도 많을텐데, 이걸 불평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세뇌해 본다. 키보드를 눌려 몇 글자 마음을 토해내기 시작하면, 힘들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하게 될까봐 두렵다.

인턴을 시작하고 한참동안이나 가족과도 이전의 친구들과의 연락도 되지 않자, 친구들이 문자를 보내왔다.

"살아 있냐?"

무슨 말을 해야할까 하다가. 겨우 답장 한다.

"살아 있다."

사실 힘들다. 지겹게 지겹게 어둠을 꾸역 꾸역 먹어왔다고 생각했던 본과 1학년과 비교하자면 마음이 편해서 훨씬 덜 힘들지만, 육체적으로는 거의 한계의 상황을 시험 받고 있다. 쉴새없이 쏟아지는 콜, 살인적인 샘플, 이렇게 IT가 발달했다는 지금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 잡일.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고 싶어서 사람이 드문 계단, 화장실, 어디에 앉아서라도 잠깐 눈을 붙여 본다. 그러면 울리는 전화기. 

"인턴 쌤~"

무한 루프

세상에 온갖 부당한 일들이 존재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의사가 되었으니까, 돈도 많이 벌고 좋지 않냐는 환상에 빠져 있을 수도 있겠지만, 말 그대로 24시간, 병원에 묶여서, 2시간 이상 연속해서 잠을 자기 힘든 상태로 3월부터 6개월을 버텨내고, 7개월째에는, 정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낸 상태가 되었다. 누가 힘들지 하면서, 달래주면 금방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힘들지 않다고,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하려 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따지자면, 심각한 수준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잠 못자고 겨우 버텨내는 사람도 한계가 있는데, 아픔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따뜻한 말한마디, 안심시켜줄 눈빛을 보내기가 쉽지가 않다.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1년이면 지나가는 문제니까, 지나고 나면 나도 이 노예제도의 수혜자가 될 것이기에, 다들 그냥, 넘어간다. 나역시 마찬가지. 버텨내는 것을 일종의 시험과 관문으로 여기면서, 자랑스러운 훈장이 될 것이라 생각하면서, 겨우 하루를 또 버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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