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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조 친구들과 함께 외래, 수술방, 분만실을 돌아가면서 산부인과 실습이 시작된지 3일째. 일과시간에는 분만실, 저녁에는 당직이 걸렸다. 다른 친구들도 하나 같이 힘들다고 투덜거렸는데, 사실 나는 좀 재밌었다. 특히나 어제는 외래에서 교수님께서 한 임산부의 초음파를 보여주셨다. 임신한지 한 5개월쯤 되었을까.
"저기 반짝이는 점 같은게 심장이야, 자~ 한번 볼까~"
교수님께서 초음파를 가져다 대자 소리가 들린다.
"슈욱, 슈욱"
심장소리가 초음파 검사를 하는 어둡고 자그마한 방에 울린다.
"슈욱, 슈욱, 슈욱"
묘한. 공감.
이 아이가 살아있구나. 이렇게 작은 심장도 뛰는구나. 감동스럽기 까지하다.
"애기 심장소리 잘들리죠?"
산모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친다.
생명은 이렇게 신비하구나. 새삼 작은 감동이 소소하게 밀려온다.
오전부터 생명의 감동에 충만해서 분만실에 앉아 있자니 온갖 잡생각이 다떠오른다. 엄마와 아기는 어떤 관계로 시작하게 되는 것일까? 애증은 애정보다 진한 것이라 했는데, 그래서 아기는 엄마를 아프게 하면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산모가 격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남자인 나로써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사실, 진성 산통이라고 부르는 통증에는 약이 없다. 무통분만이니 진통제니 하는 것들은 진성 산통에는 효과가 없다. 다만, 진통제는 진성 산통의 전후로 나타나는 가성 산통을 줄여주고, 산모가 분만시 제대로 힘을 줄 수 있도록 체력을 아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이름이 가성 산통이지 안아프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진정제에 반응을 하는 통증이라는 것이다.
초산부의 경우 약 8시간 이상의 산통을 겪어야 분만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사람마다 꽤 편차가 커서 2~3일을 아파한 뒤에야 분만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매일 같이 산모들이 아파하는 것을 보아오는 숙련된 간호사,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익숙한 장면이고 소리이지만, 보호자들은 산모가 산통을 겪는동안 초조함이 극으로 달린다. 1년 365일 반복되는 산부인과의 갈등은 오늘도 계속되었다.
분명 학생의사(PK, Subintern)라고 소개는 했지만, 가운을 입고 오후내내 분만실에 앉아 있자니 산모가 아픈데 아무것도 안해주냐는 보호자의 따가운 눈짓에 하루종일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첫날 수술방, 둘째날 외래에서 교수님의 질문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셋째날 분만실에서는 보호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1시간에 1번은 보호자가 나를 찾아서 산모의 상태가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저 이번주에 처음 실습나왔고, 분만하는 것도 처음보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르겠네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어서, 웬지 산모의 산통이 올때쯤 되면 레지던트 선생님이 계신곳 주변으로 가서 배회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몰라서 일으킬 수 있는 실수를 줄이고, 쓸데없이 레지던트 선생님을 호출하는 민폐를 줄여보겠다는 잔꾀. 효과는 아주 좋다. 보호자가 직접 질문하기 시작했다. 유후~
"고소영(가명)산모 보호자 인데요, 산모가 자꾸 아프다고 그러네요."
"아직 멀었어요. 진통제는 들어갔어요."
"의사가 산모는 보지도 않고 괜찮데.."
들릴락 말락, 침대 옆으로 돌아가는 보호자 입이 삐죽이 튀어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 네시간. 보호자는 긴장속에서 의료진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의료진과 환자-보호자의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라. 산모가 아파하는 만큼 보호자는 불안하다. 초조 불안 갈등의 고조. 분만을 향한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일과시간이 끝나고, 분만 유도를 위한 옥시토신(자궁수축제)도 중단되었다. 저녁을 먹고나면 병동은 조용해진다. 면회를 왔던 사람들은 돌아가고, 보호자와 환자는 티비에 눈을 고정한채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의료진은 밀린 일들을 정리한다. 담당환자 차트 정리. 당직 서브인턴인 내가 해야할 일은 분만실에 앉아서 담당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는 일. 한명, 두명, 세명, 네명,, 처음에는 두꺼운 차트를 뒤적거리며 한사람 한사람 어떻게 투병하고 있는지 상상하면서 작업했지만, 나중에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많기도 하지. 산부인과가 임신 분만만 하는 줄 알았지 이렇게 많은 암환자가 있는지 몰랐었다. 해야할 일을 끝낸 즐거움도 잠시, 하루종일 분만실에 붙어있는 것도 지쳐서 엎드려서 잠이 들었다.
"선생님, 산모가 아파하는데 괜찮습니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하루종일 하는일 없이 책상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인 것을 알만한데,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붙여주시는 보호자가 고맙다. 이마에는 테니스 공만한 도장자국을 만들어 놓고, 비몽사몽 눈을 떴는데, 산모가 침대를 쥐어 뜯고 있다. 헉.. 아까 교수님이 오늘 회식있으시다고 분만실 잘지키라고 했는데, 레지던트 선생님은 어디계시지?
"잠시만요."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계실 만한 곳으로 달려간다.
"선생님, 고소영(가명)산모분 지금 산통이 너무 심하시다는데요."
"분만 준비하세요. 서브인턴쌤 환자 같이 옮기고 손닦고 들어오세요."
새벽 1시. 잠이 확 깬다. 나는 오늘 당직이고. 하필 오늘 다른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회식을 가셨고, 안돌아오셨다. 인턴쌤은 어디가셨지? 혹시 실수하면 안되는데. 내가 애를 낳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이다. 손가락 지문도 없어질만큼 스크럽을 하고, 옷을입고, 장갑을 끼고, 분만대 옆에 선다.녹색 방포. 머릿속이 새하얗다. '고소영(가명)산모분은 덩치가 크고, 당뇨가 있다. 물론 아이도 크겠지. 또, 뭐더라, 뭐가 있었는데.. 에잇...' 물론 분만 가능하니까 분만을 하는 것이긴 한데, 살짝 무섭다. 나른 제외하곤 모든게 자연스럽게 분만준비가 완료된다.
"산모님 힘주세요. 네 좋습니다. 잠시 쉬시구요. 다시 힘. 힘. 힘."
"으악~!!"
세상에. 힘안드는 일이 없다. 아이를 낳는 것인지 산모를 죽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산모 얼굴이 뻘겋게 변하고, 아이의 머리가 살짝보인다. 나온다. 나온다.
"서브인턴 정신 바짝 안차릴래?"
"아~! 저 물내공. 또 너냐?"
의국에 있던 윗년차 레지던트 선생님과 소아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모두가 잠든 산부인과 병동의 밤, 조용했던 복도로 비명 소리가 새어 나간다.
"악!!! 악!!! 아악!!!!"
"산모님 힘주세요. 힘~ 힘 힘~"
"으악~!!"
아기의 머리가 삐죽이 보인다. 머리가 나오고 어깨가 나오고나니 금방이다.
눌리라면 눌리고, 당기라면 당기고. 그리고.
"서브인턴 탯줄에 겸자잡고, 옳지. 그래. 손으로 밀고, 또 겸자."
"컷"
뭐가 뭔지 정신이 없다.
어느새 손에는 큰 냉면 그릇 같은 것을 들고 흘러내리는 태반을 받았다. 따뜻하고 묵직한 핏덩어리. 이게 태반이구나. 오늘은 뭐든지 처음이다.
그런데 아이가 울지 않는다. 옆에서는 소아과 선생님이 신생아 소생술을 시작하였다. 분만실의 모두가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길,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거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지구마져 멈추어 버린듯한 적막함. 아이의 울음소리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허용하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인다. 아이가 세상으로 튀어나오면서부터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어 버린듯한 착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색과 향과 시간이 모두 잿빛이다.
"응애~~"
휴우. 모두가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의 뱃속에서 짜부라져있던 아기의 폐는 거칠게 세상의 공기를 받아들인다. 처음만난 세상의 쓴맛.
아기가 거칠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분만장의 흑백의 공기를 가르고 다시 소리가 귀에 들리고 세상은 돌아가기 시작한다. 비로소 세상이 색을 가지기 시작한다.
"분만 시간 1시 37분 입니다. 고소영(가명)베이비 3.9kg 여아입니다."
"산모님 아기가 처음에 태어나서 잠시 숨을 안쉬었습니다. 저희가 신생아 소생술을 시행하였고, 금방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아기한테 안좋은 건가요?"
"숨을 안쉰시간이 얼마되지 않아서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혹시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내일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몇가지 검사를 시행하고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워닝(주의, 위험고지)이 끝나고 분만장은 정리에 들어간다. 땀범벅. 한게 뭐가 있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범벅되었다. 누가 보면 내가 애를 놓은 것인지 산모가 애를 놓은 것인지 모를정도이다. 산모를 다시 침대로 옮기고, 그 침대를 지친 노새처럼 끌며 분만장을 빠져 나갔다. 그냥, 흐뭇해졌다.
"나중에 니가 어디 가서 분만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기면, 요렇게 받아야 한다? 알았지?"
윗년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신다.
분만장을 빠져나가자 하루종일 노심초사 걱정했던 보호자와 가족들이 반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 첫애라서, 정말 감사합니다."
담당선생님께서는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지나갔고, 나는 문득, '아뇨, 저도 처음이라서요.'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겨우 막았다. 어느새 길고 긴 하루가 지나고 새벽 2시 15분. 새로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에 지구가 다시 돌기 시작했던 오늘.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저기 반짝이는 점 같은게 심장이야, 자~ 한번 볼까~"
교수님께서 초음파를 가져다 대자 소리가 들린다.
"슈욱, 슈욱"
심장소리가 초음파 검사를 하는 어둡고 자그마한 방에 울린다.
"슈욱, 슈욱, 슈욱"
묘한. 공감.
이 아이가 살아있구나. 이렇게 작은 심장도 뛰는구나. 감동스럽기 까지하다.
"애기 심장소리 잘들리죠?"
산모의 눈에 살짝 눈물이 비친다.
생명은 이렇게 신비하구나. 새삼 작은 감동이 소소하게 밀려온다.
오전부터 생명의 감동에 충만해서 분만실에 앉아 있자니 온갖 잡생각이 다떠오른다. 엄마와 아기는 어떤 관계로 시작하게 되는 것일까? 애증은 애정보다 진한 것이라 했는데, 그래서 아기는 엄마를 아프게 하면서 태어나야만 하는 것일까? 산모가 격는 고통이 어떤 것인지 남자인 나로써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사실, 진성 산통이라고 부르는 통증에는 약이 없다. 무통분만이니 진통제니 하는 것들은 진성 산통에는 효과가 없다. 다만, 진통제는 진성 산통의 전후로 나타나는 가성 산통을 줄여주고, 산모가 분만시 제대로 힘을 줄 수 있도록 체력을 아껴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이름이 가성 산통이지 안아프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진정제에 반응을 하는 통증이라는 것이다.
진성 산통 |
가성 산통 |
||||
간격 | 규칙적 | 불규칙적 | |||
기간 | 점차 짧아짐 |
길다 | |||
강도 | 점점 증가함 |
변화없이 같음 |
|||
불편감 | 등과 복부 |
아랫배 | |||
자궁경관 개대 |
(+) | (-) | |||
진정제의 효과 |
(-) |
(+) |
초산부의 경우 약 8시간 이상의 산통을 겪어야 분만을 하게 되는데, 실제로 사람마다 꽤 편차가 커서 2~3일을 아파한 뒤에야 분만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매일 같이 산모들이 아파하는 것을 보아오는 숙련된 간호사,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익숙한 장면이고 소리이지만, 보호자들은 산모가 산통을 겪는동안 초조함이 극으로 달린다. 1년 365일 반복되는 산부인과의 갈등은 오늘도 계속되었다.
분명 학생의사(PK, Subintern)라고 소개는 했지만, 가운을 입고 오후내내 분만실에 앉아 있자니 산모가 아픈데 아무것도 안해주냐는 보호자의 따가운 눈짓에 하루종일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다. 첫날 수술방, 둘째날 외래에서 교수님의 질문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셋째날 분만실에서는 보호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1시간에 1번은 보호자가 나를 찾아서 산모의 상태가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는데 "사실, 저 이번주에 처음 실습나왔고, 분만하는 것도 처음보는 것이라 아무것도 모르겠네요."라고 차마 말할 수 없어서, 웬지 산모의 산통이 올때쯤 되면 레지던트 선생님이 계신곳 주변으로 가서 배회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몰라서 일으킬 수 있는 실수를 줄이고, 쓸데없이 레지던트 선생님을 호출하는 민폐를 줄여보겠다는 잔꾀. 효과는 아주 좋다. 보호자가 직접 질문하기 시작했다. 유후~
"고소영(가명)산모 보호자 인데요, 산모가 자꾸 아프다고 그러네요."
"아직 멀었어요. 진통제는 들어갔어요."
"의사가 산모는 보지도 않고 괜찮데.."
들릴락 말락, 침대 옆으로 돌아가는 보호자 입이 삐죽이 튀어나왔다. 그러는 사이에 한시간, 두시간, 세시간, 네시간. 보호자는 긴장속에서 의료진을 원망하기 시작한다. 도무지 해결할 수 없는 의료진과 환자-보호자의 갈등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라. 산모가 아파하는 만큼 보호자는 불안하다. 초조 불안 갈등의 고조. 분만을 향한 이야기는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한 걸음, 산부인과
일과시간이 끝나고, 분만 유도를 위한 옥시토신(자궁수축제)도 중단되었다. 저녁을 먹고나면 병동은 조용해진다. 면회를 왔던 사람들은 돌아가고, 보호자와 환자는 티비에 눈을 고정한채 이러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의료진은 밀린 일들을 정리한다. 담당환자 차트 정리. 당직 서브인턴인 내가 해야할 일은 분만실에 앉아서 담당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는 일. 한명, 두명, 세명, 네명,, 처음에는 두꺼운 차트를 뒤적거리며 한사람 한사람 어떻게 투병하고 있는지 상상하면서 작업했지만, 나중에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많기도 하지. 산부인과가 임신 분만만 하는 줄 알았지 이렇게 많은 암환자가 있는지 몰랐었다. 해야할 일을 끝낸 즐거움도 잠시, 하루종일 분만실에 붙어있는 것도 지쳐서 엎드려서 잠이 들었다.
"선생님, 산모가 아파하는데 괜찮습니까?"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하루종일 하는일 없이 책상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인 것을 알만한데,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붙여주시는 보호자가 고맙다. 이마에는 테니스 공만한 도장자국을 만들어 놓고, 비몽사몽 눈을 떴는데, 산모가 침대를 쥐어 뜯고 있다. 헉.. 아까 교수님이 오늘 회식있으시다고 분만실 잘지키라고 했는데, 레지던트 선생님은 어디계시지?
"잠시만요."
할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다. 레지던트 선생님이 계실 만한 곳으로 달려간다.
"선생님, 고소영(가명)산모분 지금 산통이 너무 심하시다는데요."
"분만 준비하세요. 서브인턴쌤 환자 같이 옮기고 손닦고 들어오세요."
새벽 1시. 잠이 확 깬다. 나는 오늘 당직이고. 하필 오늘 다른 레지던트 선생님들은 회식을 가셨고, 안돌아오셨다. 인턴쌤은 어디가셨지? 혹시 실수하면 안되는데. 내가 애를 낳는 것도 아닌데 심장이 두근반 세근반이다. 손가락 지문도 없어질만큼 스크럽을 하고, 옷을입고, 장갑을 끼고, 분만대 옆에 선다.녹색 방포. 머릿속이 새하얗다. '고소영(가명)산모분은 덩치가 크고, 당뇨가 있다. 물론 아이도 크겠지. 또, 뭐더라, 뭐가 있었는데.. 에잇...' 물론 분만 가능하니까 분만을 하는 것이긴 한데, 살짝 무섭다. 나른 제외하곤 모든게 자연스럽게 분만준비가 완료된다.
산부인과 실습 저도 처음이라서요..
"산모님 힘주세요. 네 좋습니다. 잠시 쉬시구요. 다시 힘. 힘. 힘."
"으악~!!"
세상에. 힘안드는 일이 없다. 아이를 낳는 것인지 산모를 죽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산모 얼굴이 뻘겋게 변하고, 아이의 머리가 살짝보인다. 나온다. 나온다.
"서브인턴 정신 바짝 안차릴래?"
"아~! 저 물내공. 또 너냐?"
의국에 있던 윗년차 레지던트 선생님과 소아과 레지던트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모두가 잠든 산부인과 병동의 밤, 조용했던 복도로 비명 소리가 새어 나간다.
"악!!! 악!!! 아악!!!!"
"산모님 힘주세요. 힘~ 힘 힘~"
"으악~!!"
아기의 머리가 삐죽이 보인다. 머리가 나오고 어깨가 나오고나니 금방이다.
눌리라면 눌리고, 당기라면 당기고. 그리고.
"서브인턴 탯줄에 겸자잡고, 옳지. 그래. 손으로 밀고, 또 겸자."
"컷"
뭐가 뭔지 정신이 없다.
어느새 손에는 큰 냉면 그릇 같은 것을 들고 흘러내리는 태반을 받았다. 따뜻하고 묵직한 핏덩어리. 이게 태반이구나. 오늘은 뭐든지 처음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울지 않는다. 옆에서는 소아과 선생님이 신생아 소생술을 시작하였다. 분만실의 모두가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리길,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거대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던 지구마져 멈추어 버린듯한 적막함. 아이의 울음소리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허용하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흑백으로 보인다. 아이가 세상으로 튀어나오면서부터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어 버린듯한 착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색과 향과 시간이 모두 잿빛이다.
"응애~~"
휴우. 모두가 기다리던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의 뱃속에서 짜부라져있던 아기의 폐는 거칠게 세상의 공기를 받아들인다. 처음만난 세상의 쓴맛.
아기가 거칠게 울어대기 시작한다. 아기의 첫 울음소리가 분만장의 흑백의 공기를 가르고 다시 소리가 귀에 들리고 세상은 돌아가기 시작한다. 비로소 세상이 색을 가지기 시작한다.
"분만 시간 1시 37분 입니다. 고소영(가명)베이비 3.9kg 여아입니다."
"산모님 아기가 처음에 태어나서 잠시 숨을 안쉬었습니다. 저희가 신생아 소생술을 시행하였고, 금방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아기한테 안좋은 건가요?"
"숨을 안쉰시간이 얼마되지 않아서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혹시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내일은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몇가지 검사를 시행하고 관찰하도록 하겠습니다."
짧은 워닝(주의, 위험고지)이 끝나고 분만장은 정리에 들어간다. 땀범벅. 한게 뭐가 있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범벅되었다. 누가 보면 내가 애를 놓은 것인지 산모가 애를 놓은 것인지 모를정도이다. 산모를 다시 침대로 옮기고, 그 침대를 지친 노새처럼 끌며 분만장을 빠져 나갔다. 그냥, 흐뭇해졌다.
"나중에 니가 어디 가서 분만 받아야 할 상황이 생기면, 요렇게 받아야 한다? 알았지?"
윗년차 레지던트 선생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하신다.
분만장을 빠져나가자 하루종일 노심초사 걱정했던 보호자와 가족들이 반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 첫애라서, 정말 감사합니다."
담당선생님께서는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지나갔고, 나는 문득, '아뇨, 저도 처음이라서요.'라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을 겨우 막았다. 어느새 길고 긴 하루가 지나고 새벽 2시 15분. 새로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에 지구가 다시 돌기 시작했던 오늘.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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