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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산타 바이러스 - 병원 속 작은 크리스마스 연주회

GAP 2008. 12. 2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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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오후, 주로 본과 1학년 2학년이 사용하는 1층 열람실에 불이 꺼져있다. 본과 1학년은 오늘 오전 시험을 보았고, 본과 2학년은 특성화 연구로 바빠 자리에 없다. 텅빈 열람실 옆에는 가방들과 악기들이 잔뜩 쌓여있고, 의자를 옮기는 분주한 손길들만 보인다. 로비에 설치된 크리스마스 트리옆으로 시험을 치고 눈이나 좀 붙였을까싶은 본과 1학년, 그리고 예과생들이 도란 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아이들은 어디론가 의자를 옮기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고, 누군가 가방과 악기들을 옮긴다.


  의자들이 운반된 곳은 병원 로비 2층. 가방과 악기들은 외래 진료실 앞의 구석진 의자에 놓여진다. 
 

의과대학 1층 로비

제 9회 크리스마스 연주회

  의과대학 관현악 동아리는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병원 2층 로비에서 작은 연주회를 연다. 벌써 올해로 9번째라고 한다. 매년 봄, 가을 정기 연주회 및 축제 시즌에 맞추어 연주회를 열고 거기에 크리스마스까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학교생활을 하면서도 악기를 배우고, 연습해서, 연주회까지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친구들은 시험기간에도 유급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면서도 틈틈히 연습해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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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언제해요?"
"7시 30분 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오가며 묻는다. 동시에 의자가 놓여지고, 빠르게 무대가 만들어진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간의 무대. 앉을 수 있는 의자만 있고, 같이 즐겨줄이들만 있으면 무대가되고, 작은 연주회가 된다. 가방들과 악기들이 놓여있는 구석진 외래 진료실 앞에서는 단원들은 마지막 준비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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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는 캐럴용이야. 그전에 쓰지마~."
  단장의 주문이 들어가고, 주문에 답하듯 재빨리 마지막 손풀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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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연습 더 할껄, 아쉬움의 탄성이, 혹은 초조함이 전해진다. 무대에 오르기 전의 마지막 연습. 기분 좋은 긴장과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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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모여든다. 아프고, 불편하고, 지루하기 끝없는 병원 생활, 혹은 투병 생활조그만 낙이라도 되었으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나눌수 있었으면 한다는 단장의 간단한 인사. 그리고 공연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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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 캐럴 차례가 왔다. 모두들 모자를 꺼내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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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때론 제 연주보다 청중들의 박수 소리가 더 아름답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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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처음 관현악 동아리공연을 보고 "처음 사과를 깎았을 때"에 비유한 적이 있다. 정성스럽게, 어렵게 어렵게 깎은 사과의 꿀맛과 같은 공연이었다고. 이제는 해가 더해가고, 경험이 쌓일 수록 사과깎는 실력이 늘어난 것을 부쩍 느낀다. 그렇다고 사과맛이 변한 것은 아니다. 아마도, 아주 뛰어난 연주는 아니겠지만, 공부하랴, 시험치랴, 대학생활하랴, 레포트쓰랴 바쁜 그들이 시간을 쪼개어가면서 곡을 선정하고, 그 곡을 연습하고, 그리고 무대위에 오르기 위해서 했을 마음가짐들. 연말을 맞아 조그만 즐거움이 되고자 준비했던 그들의 시간들이, 그들의 모습들이 아름다워서 더 따뜻한 무대는 아니었을까.


Leroy Anderson - The Waltzing Cat

  공연을 하는 사람도, 공연을 보는 사람도 아쉬운 듯 앵콜곡에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한번 더 연주를 하고서야 공연이 끝났다. 그리고, 아쉬운 인사. 그리고, 뒷 정리하는데 한 꼬마아이와 엄마가 찾아왔다.
"고양이 찾으러 왔어요. 아까 고양이 소리가 들려서 내려왔어요. 공연 잘봤어요." 
 자리를 정리하던 단원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도움 주신 분
공연 IJMO 렌즈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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