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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 했던 그 개는 분명 머리가 좋았나 보다. 본과 3학년, 5년째 의대를 다니는데, 아직 풍월은 커녕 교수님 질문에 쩔쩔 맨다. 어렴풋이, 아 이거 언젠가 공부했던 건데. 책장의 모습과 사진은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무슨 글자가 적혀있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마음 속으로 지나치게 나쁜 내 기억력을 탓하며, 한없이 작아진다. 고양이 앞의 생선 같은 기분이라 할까. 위기에 처하면 바퀴벌레는 아이큐가 순간적으로 수직상승하여 살길을 찾는다 했던 것 같은데, 교수님의 질문을 받는 순간, 머리가 굳어 버린다. 대답을 척척해내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또 한번 초라해지는 건 나뿐만은 아니겠지.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의과대학에 예과생으로 입학한 그 순간부터 의사가 되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물론, 어른에게 현실이 만만하지 않은 것 처럼, 한명의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수련의사, 전공의사라는 무시무시하고,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지만 무사히 졸업한 선배들이 마냥 부럽기만 한 학생아니겠는가. 그래도, 실습생으로 흰가운을 입고 병동으로 가는 순간 이미 마음만은 진짜 의사가 된다. 이름하여 서브인턴(subintern). 소속이 의과대학이니 지위는 분명 학생이다. 달리 말 할 수 없다. 학생. 병원에서 서브인턴(subintern)의 존재감은 한 1g쯤 될까?
각각의 의과대학마다 상황이 달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1년 반정도를 실습을 돈다. 정확히 몇 주를 실습을 도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분명 과거보다 길어졌으며, 6년의 의대생활 중에서도 짧은 기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만약 의과대학에 수능으로 들어온 예과생이 아니라, 의학전문대학원으로 MEET를 쳐서 들어온 경우에는 4년중에 1년 반이니 어쩌면 의대생활의 정말 중요한 한 부분이다. 이렇게 실습이 길어진 이유는 정확히는 모르지만 실습이 의학 교육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 한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기간이 더 길어진 배경에는 미국의사고시를 치기 위한 필수 실습이수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이제 나는 메이저라고 불리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실습과 최근에 필수 실습으로 지정된 정신과와 응급의학과 실습을 2/3정도 돌았다. 3인 1조, 첫 실습을 시작한 주부터 대략 일주일에 교수님이 한분씩 바뀌어가며 과외를 받는 기분으로 돌고 있다. 실제로 학생도 많지만 대학병원 규모의 부속 병원도 몇개 되기에, 한턴에 2~3조가 한과를 돌게되고, 교수님이 워낙 많으시기 때문에, 매주 매번 거의 1:1 면담 수준이다. 지난 몇년간 시험치기 직전 머리속으로 쏟아 넣은 지식들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결과, 교수님이 하시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어렵다고 느껴진다. 매번 나중에 다시 공부하고 보면 전혀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틀려서 숙제를 잔뜩 받다 보니, 실습은 생각보다 빡빡하다. 또 과정마다 해야할 기본적인 일들은 어찌나 많은지.. 예전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실습은 마냥 노는 것인 줄 알았던 나의 어리석음에 한 숨만 쏟아진다. 실제로 좀 쉬는 기분으로 실습을 도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나서 교과서를 다시 읽는 친구도 있고, 국가고시 문제집을 보며 정리해나가는 친구도 있다. 물론 내공이 좋은 경우. 나와는 무척 먼 이야기이다.
다른 친구들에게 실습을 설명할 때는 주로 교대나 사범대의 "교생실습"에 비교해서 설명한다. "교사"와 "교생" 그리고, "의사"와 "서브인턴". 생각해보면 "교생"이라는 단어가 있으니 "의생"이라는 단어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의생"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과거, "서양의사"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한의사를 "의생"이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명칭으로는 PK라고도 한다. PK는 결코 온라인 게임에서의 Player Killer나 농담처럼 말하는 Patient Killer는 아니다. 독일어에서 왔다고 하는데 Poly Klinic 즉 여러과를 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1년 반동안 정말 많은 과를 돌면서 공부를 하게 되고, 많은 학생들이 이 과정중에 졸업 후 자신이 할 과를 찾기도 한다.
서브인턴 실습 중에는 시간이 넘쳐난다는 선배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실습을 돌면서 취미생활을 불을 붙이고, 여행기를 마무리 짓고, 블로그에 일기라도 써볼 생각이었다. 환자를 마음으로 보고, 공부하고 그 기록을 남기고 공유했으면 했었다. 그런데 웬일. 항상 시작은 어렵다지만, 거짓말 좀 보태면, 첫 실습날부터 결코 편한 마음으로 쉬어 본적이 없다. 물론, 처음에는 실습에 적응하기 위해서 바빴고, 공부해야 할 양이 많아서 힘들었다. 교수님과 1:1 과외라니. 부담감에 발길이 무겁다. 학교에서 공부를 할때처럼 큰 시험은 없지만, 매 순간이 평가를 받는 순간이라고도 느껴졌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매일 아침 그런 무거운 발걸음으로 병원으로 출근 할 수는 없다. 금방 지치고 힘들어지게 된다. 편한 마음으로 휴식을 갖지 못하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의 마음가짐.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만약 내가 성적이나 등수에서 학업의 기쁨을 찾았다면 이미 진작에 의과대학 포기하고 나갔을 것이다. 쉽게 말해, 나는 의과대학 내에서 우등생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공부는 항상, 무척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잘 못본다. 쉽게 말하자면 공부 잘 못한다. 가끔은 친구들에 비해 머리가 나쁘다고도 생각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도 뭐라 할 말은 없다. 그래도 가운만 입으면 왠지 의사 같다. 그러니 묘한 마음도 든다. 묘한 욕심.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좋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욕심. 그런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실습을 돌면서 부쩍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교과서를 보는 공부도 하고 있고, 담당하는 환자도 열심히 보고 있다. 전혀 쓸모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담당하는 환자 한명 한명 진심으로 내가 담당의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하고 있다. 검사결과가 나오면 잘몰라도 고민해보고, 관련있을만한 사실들을 열거해보거나, 교과서를 다시 읽어본다. 물론, 환자 치료에 직접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미래의 내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며 위로 한다.
의대도, 병원 실습도 한창 중반을 넘어서서 7부 능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공부는 잘 못했지만, 실습을 돌면서 좋은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학업에 욕심도 부리고 있다. 몸은 좀 힘들어도 마음이 넉넉한 의사. 그리고 모든 의학적 지식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환자와 관련된 것은 미친듯이 찾아서 항상 공부하는 그런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거. 이거 하나는 확실히 챙겨가는 의과대학 서당개 3년 아니 서브인턴이 되자.
어른이 되기만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의과대학에 예과생으로 입학한 그 순간부터 의사가 되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물론, 어른에게 현실이 만만하지 않은 것 처럼, 한명의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수련의사, 전공의사라는 무시무시하고, 험난한 과정이 기다리지만 무사히 졸업한 선배들이 마냥 부럽기만 한 학생아니겠는가. 그래도, 실습생으로 흰가운을 입고 병동으로 가는 순간 이미 마음만은 진짜 의사가 된다. 이름하여 서브인턴(subintern). 소속이 의과대학이니 지위는 분명 학생이다. 달리 말 할 수 없다. 학생. 병원에서 서브인턴(subintern)의 존재감은 한 1g쯤 될까?
의과대학 5학년. 서브인턴
이제 나는 메이저라고 불리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실습과 최근에 필수 실습으로 지정된 정신과와 응급의학과 실습을 2/3정도 돌았다. 3인 1조, 첫 실습을 시작한 주부터 대략 일주일에 교수님이 한분씩 바뀌어가며 과외를 받는 기분으로 돌고 있다. 실제로 학생도 많지만 대학병원 규모의 부속 병원도 몇개 되기에, 한턴에 2~3조가 한과를 돌게되고, 교수님이 워낙 많으시기 때문에, 매주 매번 거의 1:1 면담 수준이다. 지난 몇년간 시험치기 직전 머리속으로 쏟아 넣은 지식들이 자리를 제대로 잡지 못한 결과, 교수님이 하시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도 어렵다고 느껴진다. 매번 나중에 다시 공부하고 보면 전혀 엉뚱한 소리를 지껄이고, 틀려서 숙제를 잔뜩 받다 보니, 실습은 생각보다 빡빡하다. 또 과정마다 해야할 기본적인 일들은 어찌나 많은지.. 예전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실습은 마냥 노는 것인 줄 알았던 나의 어리석음에 한 숨만 쏟아진다. 실제로 좀 쉬는 기분으로 실습을 도는 경우도 있다. 시간이나서 교과서를 다시 읽는 친구도 있고, 국가고시 문제집을 보며 정리해나가는 친구도 있다. 물론 내공이 좋은 경우. 나와는 무척 먼 이야기이다.
의대에 들어온다고 자동으로 의사 되는건 아니잖아?
다른 친구들에게 실습을 설명할 때는 주로 교대나 사범대의 "교생실습"에 비교해서 설명한다. "교사"와 "교생" 그리고, "의사"와 "서브인턴". 생각해보면 "교생"이라는 단어가 있으니 "의생"이라는 단어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의생"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과거, "서양의사"가 들어오면서 기존의 한의사를 "의생"이라고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명칭으로는 PK라고도 한다. PK는 결코 온라인 게임에서의 Player Killer나 농담처럼 말하는 Patient Killer는 아니다. 독일어에서 왔다고 하는데 Poly Klinic 즉 여러과를 돈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1년 반동안 정말 많은 과를 돌면서 공부를 하게 되고, 많은 학생들이 이 과정중에 졸업 후 자신이 할 과를 찾기도 한다.
일정이 없을때는 실제로 많은 시간을 서브인턴실에서 보낸다.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지만, 좋은 의사가 되고 싶어.
의대도, 병원 실습도 한창 중반을 넘어서서 7부 능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공부는 잘 못했지만, 실습을 돌면서 좋은 의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학업에 욕심도 부리고 있다. 몸은 좀 힘들어도 마음이 넉넉한 의사. 그리고 모든 의학적 지식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환자와 관련된 것은 미친듯이 찾아서 항상 공부하는 그런 의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거. 이거 하나는 확실히 챙겨가는 의과대학 서당개 3년 아니 서브인턴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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