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저 태안 다녀왔습니다.

GAP 2007. 12. 2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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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안봉사활동 갔다온다고 한지가 한참이 지났는데 소식이 늦었네요. 개인적인 일들로 요즘에 조금 바쁘고 심란해서, 도무지 집중이 안되더라구요. 오늘에서야 이렇게 포스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번에 거창하게 말해놓고는 그냥 소박하게 봉사활동하고 왔습니다. 목이늘어난 흰 면티 몇 장을 종이가방에 쑤셔 넣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유기용제 마스크부직포 작업복, 비옷, 고무장갑, 장화를 챙겼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10명의 친구가 함께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왕복 교통비 한사람에 17000원. 각종 준비물이 13000원. 결론적으로 3만원의 회비를 챙겨들고 출발지인 부산 시청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버스가 한두대정도 가겠지 생각했었는데, 이게 웬걸. 10시라고 일러준 출발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9시 30분 부터 벌써 버스들이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한대. 두대. 세대... 저희 일행은 9번째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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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띠걷어내고바다살려요!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20대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겨울방학이 시작된 대학생이 많이 않을까 혼자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탄 버스 뒤로도 몇대가 더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도시를 서서히 빠져나간 버스는 아무도 없는 한밤의 고속도로를 줄지어 달려 휴게소에 이르렀습니다. 그제서야 주욱 늘어선 버스를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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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휴게소 - 늘어선 버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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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게소에 다른 이용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봉사단을 태운 버스들만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나중에 운영자분께서 오늘 버스 17대가 동시에 움직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버스에 45명이 탑승할 수 있으니 약 760여명이 봉사활동을 위해 한번에 이동하고 있는 것이었죠.

 부산에서 태안까지는 꼬박 4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여유를 부리면서 천천히 달려서, 새벽에 태안에 도착하고, 정지한채로 봉사단원들이 의자에서 잠을 좀 잤습니다. 7시가 될쯤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서 방제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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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제복으로 갈아입은 김모군

버스에 내리자마자 기름냄새가 밀려왔습니다. 생각보다 심하더군요.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버스들이 줄지어서있고, 많은 봉사단원들이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기증한 듯한 재사용 가능한 작업복도 많이 쌓여 있었고, 많은 장화들도 봉사단원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먼저 봉사활동을 하고 다음 봉사단원을 위해 남겨놓고 간 것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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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단원을 기다리는 장화들

 저희가 봉사활동을 할 곳은 구름포 해수욕장이었습니다. 사고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심하게 받은 곳 중 하나입니다. 옷을 갈아입고, 현장으로 도착했을때 생각보다 바다는 깨끗해 보였습니다. 모래밭역시 많이 깨끗해진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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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덮어쓰고 현무암처럼 검어진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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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기름을 덮어썼던 돌들은 아직도 검게 물든 상태였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어디선가 계속 헌옷을 담은 상자나 포대가 배달되었고, 빈 포대에는 다시 기름을 닦아낸 헌옷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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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봉사활동오신 분들

 계속 사람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저마다 손에는 헌옷을 하나씩 들고, 아침 7시부터 돌에 묻은 기름을 닦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바다의 눈물, 바위의 눈물이라는 표현을 썼다는데, 그말이 새삼 되새겨집니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계속 기름이 묻어나왔습니다. 오전 내내 돌을 닦았습니다. 정신없이 닦았습니다. 그래도 처음 앉았던 자리를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닦고 또 닦고. 준비해가 솔은 생각보다 역할을 잘 못합니다. 역시 힘으로 문지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큰돌, 작은돌 닦다가 친구와 둘이서 바위를 닦아 봅니다. 바위의 옆면에 생각보다 많은 기름이 묻어 있습니다. 손에 들고있던 흰 옷들이 검게 변하고, 스스로 낸 열기에 땀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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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를 하러가는 이모군

 확성기로 11시 반부터 점심식사를 준다고 합니다. 허기도 지고, 힘도들어서 시간에 맞춰서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같이간 친구 모두 장갑과 장화, 작업복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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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범벅이 된 고무 장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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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을 벗고, 줄을 서서 식사를 기다리는 이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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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서서 컵라면을 기다리는 사람들

  점심식사 역시 자원봉사였습니다. 컵라면, 빵, 음료수, 김치, 귤 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마스크를 벗자 기름냄새가 몰려왔지만, 그런건 이제 신경도 쓰이지 않았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습니다. 국물까지 한사발 깔끔하게 마셨습니다. 새삼 이번 원유 누출사고가 엄청난 자원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쏟아진 원유는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이곳까지 수송하고, 먹이고, 이 사람들이 입었던 작업복과 장화, 고무장갑 역시 엄청난 자원이 필요한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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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을 먹고 다시 작업을 하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보니, 아까 작업하던 곳은 기름이 밀려와서 완전히 돌들이 기름에 묻은 상태였는데, 조금 높은 곳에는 기름으로 된 파도가 쳤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바다가 전부 두터운 기름에 빠졌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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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을 닦아내다가 땅에 박혀있다고 생각했던 돌을 우연히 들어보았습니다. 돌 아래에는 기름이 고여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습니다. 산유국도 아닌데.. 차례차례 옆의 돌들도 뒤집으면서 닦았습니다. 아침보다 훨씬 많은 기름이 묻어나왔습니다. 당장 눈앞에 돌만 닦는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돌을 뒤집을때마다 기름이 많이 고여있었습니다. 계속 뒤집으면서 기름을 닦았습니다. 헌옷들은 손에 잡히는대로 시커멓게 기름이 묻었고, 받아왔던 옷들도 금새 다써버렸습니다. 고개를 들고 새(?)헌옷을 찼는데, 바다가 코앞까지 들어왔습니다. 밀물이었습니다. 금새 모래밭이 바다로 바뀌었고, 한번 파도가 칠때마다 바다가 더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닦아야 한다는 생각과, 이렇게 닦았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많다는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분했습니다. 속상하고, 미웠습니다. 아직 다 못닦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절망감, 좌절감, 죄책감 범벅이 되었습니다. 미친듯이 닦았습니다. 해안쪽으로 조금씩 이동해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닦으려 했습니다. 사고를 낸 선박을 진심으로 원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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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물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해변으로 밀어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닦아보려고 하는 사람들 옆에 돌들에 붙어서 마저 작업을 했습니다. 삽을 치워내고, 기름을 닦아냈던 헌옷들을 잘 담아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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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더 닦아내볼려고 합니다. 일사분란하게 사용한 헌옷들을 수거하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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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을 퍼냈던 도구들

 더 이상 작업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무장갑과 방제복을 벗고 다시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하나의 해변이 더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아쉬웠는지 바다위에 뜬 기름을 조금이라도 더 제거하려고 파도에 맞서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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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물이 밀려올 때 어찌나 마음이 절박해지는지, 얼마나 미안하고 화나는지 이 분들도 다 아실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결국 태안 봉사활동은 아쉬운 마음만, 미안한 마음만 남긴채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함께 갔던 많은 분들 역시,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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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스럽게도, 닦아내도 닦아내도 검게 묻어나오는 기름에 우리의 바다가, 우리의 자연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상처는 앞으로도 오랜시간 우리가 돌보아야할 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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