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거창하게 말해놓고는 그냥 소박하게 봉사활동하고 왔습니다. 목이늘어난 흰 면티 몇 장을 종이가방에 쑤셔 넣고, 인터넷으로 주문한 유기용제 마스크와 부직포 작업복, 비옷, 고무장갑, 장화를 챙겼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10명의 친구가 함께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왕복 교통비 한사람에 17000원. 각종 준비물이 13000원. 결론적으로 3만원의 회비를 챙겨들고 출발지인 부산 시청으로 갔습니다.
처음에는 버스가 한두대정도 가겠지 생각했었는데, 이게 웬걸. 10시라고 일러준 출발시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9시 30분 부터 벌써 버스들이 출발하고 있었습니다. 한대. 두대. 세대... 저희 일행은 9번째 버스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검은띠걷어내고바다살려요!
고속도로 휴게소 - 늘어선 버스들
휴게소에 다른 이용객은 거의 없었습니다. 봉사단을 태운 버스들만 줄지어 늘어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는 생각에 뿌듯하면서도 자랑스럽다는 생각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나중에 운영자분께서 오늘 버스 17대가 동시에 움직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버스에 45명이 탑승할 수 있으니 약 760여명이 봉사활동을 위해 한번에 이동하고 있는 것이었죠.
부산에서 태안까지는 꼬박 4시간 정도가 걸립니다.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여유를 부리면서 천천히 달려서, 새벽에 태안에 도착하고, 정지한채로 봉사단원들이 의자에서 잠을 좀 잤습니다. 7시가 될쯤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서 방제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방제복으로 갈아입은 김모군
봉사단원을 기다리는 장화들
기름을 덮어쓰고 현무암처럼 검어진 돌
하지만, 기름을 덮어썼던 돌들은 아직도 검게 물든 상태였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오셔서 작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어디선가 계속 헌옷을 담은 상자나 포대가 배달되었고, 빈 포대에는 다시 기름을 닦아낸 헌옷을 넣었습니다.
단체로 봉사활동오신 분들
점심식사를 하러가는 이모군
기름 범벅이 된 고무 장갑
고무장갑을 벗고, 줄을 서서 식사를 기다리는 이모양
줄서서 컵라면을 기다리는 사람들
밥을 먹고 다시 작업을 하던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보니, 아까 작업하던 곳은 기름이 밀려와서 완전히 돌들이 기름에 묻은 상태였는데, 조금 높은 곳에는 기름으로 된 파도가 쳤었던 것 같습니다. 이 바다가 전부 두터운 기름에 빠졌었다는 생각을 하니 끔찍합니다.
돌을 닦아내다가 땅에 박혀있다고 생각했던 돌을 우연히 들어보았습니다. 돌 아래에는 기름이 고여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습니다. 산유국도 아닌데.. 차례차례 옆의 돌들도 뒤집으면서 닦았습니다. 아침보다 훨씬 많은 기름이 묻어나왔습니다. 당장 눈앞에 돌만 닦는다고 정신이 없었는데, 돌을 뒤집을때마다 기름이 많이 고여있었습니다. 계속 뒤집으면서 기름을 닦았습니다. 헌옷들은 손에 잡히는대로 시커멓게 기름이 묻었고, 받아왔던 옷들도 금새 다써버렸습니다. 고개를 들고 새(?)헌옷을 찼는데, 바다가 코앞까지 들어왔습니다. 밀물이었습니다. 금새 모래밭이 바다로 바뀌었고, 한번 파도가 칠때마다 바다가 더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닦아야 한다는 생각과, 이렇게 닦았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많다는 생각에, 화가 났습니다. 분했습니다. 속상하고, 미웠습니다. 아직 다 못닦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하고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절망감, 좌절감, 죄책감 범벅이 되었습니다. 미친듯이 닦았습니다. 해안쪽으로 조금씩 이동해가면서, 조금이라도 더 닦으려 했습니다. 사고를 낸 선박을 진심으로 원망했습니다.
밀물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해변으로 밀어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닦아보려고 하는 사람들 옆에 돌들에 붙어서 마저 작업을 했습니다. 삽을 치워내고, 기름을 닦아냈던 헌옷들을 잘 담아서 옮깁니다.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조금이라도 더 닦아내볼려고 합니다. 일사분란하게 사용한 헌옷들을 수거하고, 마무리 작업을 진행합니다.
기름을 퍼냈던 도구들
바닷물이 밀려올 때 어찌나 마음이 절박해지는지, 얼마나 미안하고 화나는지 이 분들도 다 아실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결국 태안 봉사활동은 아쉬운 마음만, 미안한 마음만 남긴채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함께 갔던 많은 분들 역시,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새삼스럽게도, 닦아내도 닦아내도 검게 묻어나오는 기름에 우리의 바다가, 우리의 자연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이 상처는 앞으로도 오랜시간 우리가 돌보아야할 것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주절주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숭례문, 빠른 복원보다는 바른 복원이 좋다. (6) | 2008/02/12 |
|---|---|
| 산타할아버지 버스타고 선물배달하시네. (3) | 2008/01/01 |
| 저 태안 다녀왔습니다. (15) | 2007/12/27 |
| 저 태안갑니다. (25) | 2007/12/15 |
| 입원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 (5) | 2007/12/13 |
| 베스트 포토 선정에 감사드립니다. +_+ (8) | 2007/12/03 |
|
|
|
|
|
|
|
-
고군 2007/12/27 10:31
아...부산에 사시는군요^^
그 먼거리를 새벽부터 달리고 가시느라 무척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갈때마다 저런 작업을 계속 반복적으로 해야 한다니...저도 닦아내면서 화도 나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고....사고를 낸 당사자들에 대한 원망도 생기고...그랬더랬죠.
그래도 아직도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고 있다고 하니 감동 그자체이지 않습니까?
subit님의 글을 보면서 마치 제가 현장에서 일을 도운 느낌이 드네요^^
수고 정말 많으셨습니다^^-
[subit] 2007/12/27 20:17
고군님도 수고 많이하셨습니다. ^_^
저는 너무 늦게 간 것은 아닌지 미안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밀물이 들어올때는 어찌나 분통터지던지 ㅎ
아직 섬쪽에는 방제가 잘 안이루어 진다는데, 걱정입니다. ㅎ_ㅎ
-
-
Sarum 2007/12/27 14:47
고생 많으셨네요...
제 블로그 까지 찾아주시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도 살짝 들렸다가..
이렇게 발자국 살포시 남기고 갑니다.
저는 개인 자격으로 가서 그런지 저렇게 대규모로 움직이는것도 부럽네요.
지출도 줄어들고... 전 기름값에.. 이런 저런 해서 지출 규모가 꽤 커지더라구요. ㅎㅎ
그래도 한번 더 갈려고 생각중입니다. ^^ -
나인테일 2007/12/28 02:12
정말이지 닦아도 닦아도 닦아지지 않은 검은 돌과 여전히 끊임없이 밀려오는 기름띠들을 보면 도우러 갔다가도 절망해 버릴 것 같더군요. 지금도 생각하면 답답합니다.
-
blue_day 2007/12/28 18:54
어우 저두 오늘밤 태안출발합니다,,
사진보니 정말 생각보다 심하네요,,
친구들과 기름닦으며 연말을 보낼생각이에요 ㅎㅎ
저두 쪼끔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하네요 -
-
[subit] 2007/12/31 04:32
많이 깨끗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실제로 기름 냄새도 맡고, 일도 도왔지만, 마음이 너무 아프더군요. 하루빨리, 다시 예전의 아름다웠던, 청정해역으로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
-
소인 2008/01/01 14:40
볼때마다 소름이 쫙 돋네요
검게 변한 돌보고 한번..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또한번.
밀물들어올때 무릎까지 물이 찼는데도 마지막까지 하나라도 더 닦으려는 사람들의 모습
정말 감동적이였습니다 ㅠ_ㅠ..-
[subit] 2008/01/01 18:23
그러게요. 너무 속상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네요.
부디. 복구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아서,
하루빨리 예전의 청정해안으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