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터키 모자이크 패턴 양식 비교와 역사
다들 모자이크를 없애는데 관심이겠지만, 과거에는 모자이크를 통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관심이었습니다. 그 중에 인도 모자이크 패턴과 터키 모자이크 패턴은 어떻게 다른지, 그 각각의 양식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왜 비슷한 모자이크 문화를 가지게 되었는지 모자이크의 역사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두 문화에서 모자이크 양식의 기하학적 특징, 색상, 재료, 기술적인 차이를 비교하고, 각각의 발전 과정과 문화적 영향을 분석하여 설명하겠습니다.
1. 양식 비교
인도(무굴) 모자이크 양식: 무굴 제국 시대 인도의 모자이크 장식은 정교한 기하학 및 식물 문양과 풍부한 색채가 특징입니다. 대표적으로 타지마할과 이티마드 웃다울라 무덤 등의 건축물에서 볼 수 있는 석재 상감 공예(피에트라 두라)가 있습니다. 이는 대리석 바탕에 옥, 남옥, 청금석 등 색색의 준보석을 잘라 끼워 넣어 꽃과 덩굴, 기하학 무늬를 만드는 기법으로, 무굴 양식에서는 이를 “파르친 카리(Parchin Kari)”라 불렀습니다 (Pietra dura - Wikipedia)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흰 대리석 표면 위에 붉은 카멀린, 파란 청금석, 초록 옥 등 다채로운 색의 돌들이 정교하게 맞춰져 있으며, 꽃병이나 아라베스크 무늬, 연꽃과 국화 같은 식물 모티프가 섬세하게 표현되었습니다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또한 무굴 모자이크는 건축 표면에 직접 새겨 넣는 상감 외에도, 유약을 입힌 타일이나 유리 조각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무굴 시대 라호르의 샤 지한이 지은 시샤 마할(거울 궁전)은 백색 대리석 내부에 거울 조각을 박아 넣어 빛을 반사시키는 모자이크 장식으로 유명하며 (Sheesh Mahal (Lahore Fort) - Wikipedia) (Sheesh Mahal (Lahore Fort) - Wikipedia), 이는 페르시아에서 유행한 “거울 모자이크” 기법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File:Tile art at Wazir khan Mosque.jpg - Wikimedia Commons) 무굴 시대 와지르 칸 모스크의 파이언스 모자이크 타일 패널. 붉은색, 청록색, 코발트색 등으로 채색된 꽃과 덩굴무늬가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스크는 무굴 황제 샤 자한 시대(1630년대)에 건립되어 페르시아 카시 카리(Kashi Kari) 기법의 화려한 타일 장식으로 유명하다.*
무굴 양식의 모자이크는 이처럼 벽면과 기둥을 뒤덮는 섬세한 장식 타일도 활용했습니다. 특히 카시 카리로 불리는 페르시아식 타일 모자이크 기법이 도입되어, 라호르의 와지르 칸 모스크처럼 외벽 전체를 뒤덮는 화려한 타일 장식이 나타났습니다 (Wazir Khan Mosque - Wikipedia). 이 타일 모자이크들은 코발트 블루(남색), 피로지(청록), 녹색, 흰색 등 페르시아풍의 색상 조합을 보여주는데 (Wazir Khan Mosque - Wikipedia), 꽃과 덩굴, 아라베스크 문양이 대칭적·반복적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무굴 모자이크 패턴은 대칭을 중시하고 세밀한 묘사로 화려함을 추구했으며, 종교적인 이슬람 건축물에서는 문자 콜리그래피 상감도 사용되었습니다. 타지마할의 입구를 둘러싼 쿠란 구절 흑색 대리석 상감이나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델리의 자마 마스지드에 사용된 대리석과 사암의 대비 장식 등이 그 예입니다. 요컨대 무굴의 모자이크 예술은 대리석과 보석, 타일을 활용해 꽃과 기하학 문양을 화려하면서도 조화롭게 표현한 것이 특징입니다.
터키(오스만) 모자이크 양식: 튀르키예 지역의 모자이크 전통은 Seljuk(셀주크) 왕조부터 오스만 제국에 이르는 이슬람 타일 예술로 이어집니다. 초기에는 작은 색타일 조각들을 짜맞추는 모자이크 파이언스 기술이 발달하여, 기하학 별무늬, 별 & 육각형 패턴, 쿠피체 및 술루스체 아라비아 글씨 등의 장식을 건축 표면에 구현했습니다 (İznik Vakfı). 이 시기 주로 사용된 색은 터키석 같은 청록색과 코발트 남색, 자주색, 흑백 등으로, 터키 지역 Seljuk 건축물의 벽면과 돔을 장식했습니다 (İznik Vakfı). 예를 들어, 코냐의 메드레세(신학교)나 디브리이의 거대 사원에서는 청록색과 군청색 타일을 잘게 잘라 모눈꼴과 별 패턴을 구성한 외벽 모자이크를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오스만 제국 시대에 들어서 타일 예술은 이즈니크 타일로 절정에 달하는데, 이는 소성된 도기판에 무늬를 그려 유약을 씌워 구워낸 언더글레이즈 기법의 타일입니다 (İznik Vakfı) (Iznik pottery - Wikipedia).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도공들은 중국의 청화백자 영향을 받아 흰 바탕에 코발트 청색 문양을 그리는 기법을 발전시켰고, 16세기 중엽부터는 청색 외에 옅은 자주색과 소나무 녹색을 더하다가 곧 선명한 적색(철을 이용한 볼 레드)과 에메랄드 녹색을 도입하여 팔레트를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Iznik pottery - Wikipedia). 그 결과 오스만 타일 패턴에는 전통적인 아라베스크 무늬와 함께 튤립, 카네이션, 장미, 히아신스 같은 화려한 꽃 문양이 나타나게 되었고 (İznik Vakfı), 이는 흰 바탕 위에 청색·청록색·적색 등으로 그려져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습니다. 기하학 문양과 식물 모티프가 혼합되고, 종교 건축의 경우 쿠란 구절을 적색이나 흰색 글씨로 타일에 써넣어 테두리를 장식하는 등 문자 장식도 두드러졌습니다.
(File:Edirne Selimiye mosque Tiles on arches in 2017 3261.jpg - Wikimedia Commons) 오스만 시대 에디르네 셀리미예 모스크 내부 아치의 이즈니크 타일 장식. 흰 바탕에 청색 테두리와 꽃무늬가 그려져 있으며, 튤립과 카네이션, 연꽃 무늬 등 16세기 오스만 도자기 예술의 전형적인 패턴이 보인다.*
오스만 모자이크 패턴은 주로 건축 내부를 장식하는 타일 패널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블루 모스크) 내부는 2만 장이 넘는 이즈니크 타일로 덮여 있어, 벽면과 돔을 푸른빛 문양으로 수놓았습니다 (Iznik pottery - Wikipedia). 또한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루스템 파샤 모스크 등 16세기 이스탄불의 숱한 모스크와 예배당들이 서로 다른 꽃과 덩굴 패턴의 이즈니크 타일로 실내를 장식했습니다 (Iznik pottery - Wikipedia). 오스만 시대 왕궁인 톱카프 궁전의 방들과 술탄들의 영묘(türbe) 내부 역시 정교한 타일 패널로 치장되었는데, 특히 에디르네의 셀리미예 모스크(1575년 완공)는 당시 최고 품질의 이즈니크 타일을 사용한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Category:Iznik tiles in Selimiye mosque in Edirne) (Ottoman architecture Facts for Kids). 오스만 모자이크 양식은 이처럼 도기 타일에 밑그림을 그리고 유약을 발라 구워낸 패널을 조합하는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그 문양은 페르시아 전통의 아라베스크와 당시 궁정 화가들이 도입한 중국적 꽃 그림 스타일이 융합되어 우아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Iznik pottery - Wikipedia).
2. 역사적 발전
인도 모자이크의 기원과 발전: 인도 아대륙에서 모자이크 기법은 고대로부터 존재했으나, 이슬람 왕조 통치와 함께 본격적으로 발전했습니다. 델리 술탄 왕조 시기(1315세기)에 이미 투르크-페르시아 장인들이 일부 무덤과 사원에 청색 유약 타일 장식을 도입했으며, 무굴 제국(1619세기)에 이르러 모자이크 예술은 새로운 정점을 맞이합니다. 무굴 황실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예술을 계승하여 인도식으로 발전시켰는데, 예를 들어 17세기 무굴 황제 자한기르와 샤 자한 시대에는 이탈리아의 피에트라 두라(경석 모자이크) 기법을 받아들여 독자적으로 재해석하였습니다 (Pietra dura - Wikipedia). 무굴 황실은 유럽 르네상스 보석 상감 기술자들까지 궁정에 불러들였던 것으로 전해지며, 타지마할의 정교한 상감 기술에는 로마 피에트라 두라와의 유사성으로 보아 이탈리아 장인의 참여가 있었을 가능성이 지적됩니다 (A Closer Look At The Taj Mahal’s Mosaics). 이러한 외래 기법은 “파르친 카리”라 불리는 무굴 특유의 상감 양식으로 토착화되어, 인도 대리석 건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특히 1628년 완공된 아그라의 이티마드 웃다울라 묘당은 무굴 최초로 전면에 백색 대리석과 다색 옥석 상감만을 사용한 건물로, 이후 타지마할(1653년 완공)에 이르는 백색 대리석+보석 상감 건축의 전형을 예고했습니다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무굴 모자이크 예술은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영향도 크게 받았는데, 황실 여성 누르 자한이 페르시아 출신 장인들을 후원하여 이티마드 웃다울라 묘를 장식했고 그 문양은 이란 전통의 측백나무, 꽃다발 문양과 당대 회화에 나타나는 사실적인 식물도안까지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한편으로 무굴 제국은 이슬람 예술 전통에 따라 종교 건축에는 인간이나 동물 형상을 배제하고 아라베스크와 쿠란 서체 장식을 강조했지만, 세속 궁전이나 무덤 내부에서는 회화적 요소도 가미했습니다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18세기 이후 무굴의 국력이 약해지면서 이러한 대규모 모자이크 건축은 줄어들었으나, 아그라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 상감 공예품 제작 전통은 계속 이어져 오늘날에도 그 유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Pietra dura - Wikipedia).
터키 모자이크의 기원과 발전: 튀르키예 지역의 모자이크 패턴 예술은 이슬람권의 타일 공예 발전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89세기 투르크계 위구르 시대에 이미 채색 타일이 사용된 기록이 있으며 (İznik Vakfı), 셀주크 제국 시기(1113세기)에 이르러 타일 예술은 첫 르네상스를 맞았습니다. 셀주크 터키인들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전통을 바탕으로 터키의 다채로운 문화 요소를 접목시켜, 건축 표면 장식을 위한 새로운 기술들을 도입했습니다 (İznik Vakfı). 예컨대 청록색, 코발트색, 자주색, 흑색으로 유약을 입힌 벽돌을 수평·지그재그 등으로 배열하는 기법이나 (İznik Vakfı), 서로 다른 색의 작은 타일 파편을 맞추어 별모양이나 아라베스크 문양을 구성하는 모자이크 타일 기법이 개발되어 16세기 중반까지 널리 쓰였습니다 (İznik Vakfı). 셀주크 양식 모자이크는 주로 기하학 무늬와 쿠피 또는 술루스체로 쓰인 서예 구절, 식물 덩굴무늬를 특징으로 하며, 터키석 색과 남색 대비가 두드러지는 팔레트를 보여주었습니다 (İznik Vakfı). 이러한 전통은 오스만 제국으로 계승되었지만, 14세기~15세기 초반 아나톨리아 지방왕조 시대에는 한때 정체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İznik Vakfı). 그러나 오스만 제국이 부국강병과 더불어 예술 후원을 강화하면서 타일 공예는 다시 도약하게 됩니다 (İznik Vakfı). 15세기 후반 오스만 술탄 메흐메드 2세 등은 중국 도자기를 애호하여 그 대체품을 현지에서 만들고자 장인을 지원했고 (Iznik pottery - Wikipedia), 이를 통해 이즈니크에서 청화 자기 기법을 모방한 청백 양식(blue-and-white)이 탄생했습니다 (İznik Vakfı). 16세기 초에는 이란 출신 화가 샤 콜루 등이 이스탄불로 와서 궁정 도안가로 활동하며 새로운 화훼 무늬 양식을 도입했고 (Iznik ewer (article) | Later period - Khan Academy), 이는 전통적인 이슬람 아라베스크와 중국적 구름·연꽃 문양이 혼합된 독특한 오스만 스타일을 형성했습니다. 술레이만 대제 시기부터 국력을 반영하듯 건축 규모가 커지고 장식 타일 수요도 폭증하여, 장인들은 기존의 모자이크 타일 대신 생산력이 높은 페인트 타일 기법(언더글레이즈)을 대량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Iznik pottery - Wikipedia). 16세기 중엽에는 이즈니크 도공들이 새로운 색을 계속 개발하여, 1550년대경부터 선명한 적색과 밝은 녹색이 타일에 등장하였고 (Iznik pottery - Wikipedia), 이는 오스만 타일 예술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미마르 시난이 설계한 술탄Ahmed 모스크(블루 모스크, 1616년)까지 다채로운 타일로 장식된 걸작 건축들이 잇따랐으나 (Iznik pottery - Wikipedia), 17세기 후반 이후로는 이즈니크 도자기 생산이 급격히 쇠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만 예술은 18세기 “튤립 시대”를 전후해 유럽 바로크, 로코코 양식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타일 문양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18세기 후반 톱카프 궁전의 일부 방이나 19세기 돌마바흐체 궁전의 장식에는 서양식 꽃병과 화훼 무늬가 도자 패널에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터키 모자이크 패턴 예술은 셀주크로부터 오스만에 이르기까지 이슬람 세계 내부의 교류(페르시아, 아랍)와 외부의 영향(중국 도자, 유럽 양식)을 꾸준히 흡수하며 발전해온 것입니다.
3. 공통점과 차이점
인도 무굴과 터키 오스만의 모자이크 패턴은 모두 이슬람 예술 전통 속에서 발전하여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보입니다. 우선 두 양식 모두 아나아이코닉(비구상) 전통을 따르기 때문에, 종교 건축에서는 인간이나 동물 형상 대신 기하학적 무늬, 식물 추상 문양, 그리고 아랍어 서체 장식을 활용합니다. 예컨대 타지마할과 셀리미예 모스크 모두 쿠란의 구절을 건물 표면에 장식하되, 하나는 흑색 대리석 상감으로, 다른 하나는 청백 타일에 필서를 써서 표현하는 식입니다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또한 두 문화 모두 페르시아의 예술적 영향을 크게 받아 아라베스크 덩굴무늬, 연꽃과 국화(인도)나 튤립과 카네이션(터키) 등 이란 및 중앙아시아에서 유행한 모티프를 발전시켰습니다. 건축적으로도 무굴과 오스만 황실은 모자이크를 사원·모스크, 묘당, 궁전 등 주요 건축물의 내부외부 장식을 극대화하는 데 활용하여, 찬란한 색채와 무늬로 권위와 신성함을 나타냈습니다. 정교한 제작기술에 대한 후원, 대칭과 균형을 중시하는 미학 등도 공통적입니다.
한편, 두 양식은 사용된 기법과 재료, 그리고 문화적 맥락에서 뚜렷한 차이점도 보입니다.
제작 기법 측면에서 무굴 모자이크는 주로 대리석에 보석이나 돌을 끼워넣는 상감기법과 색유리·거울 조각 붙임 등을 즐겨 쓴 반면 (Sheesh Mahal (Lahore Fort) - Wikipedia)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오스만 모자이크는 도기 타일에 그림을 그려 구워낸 패널을 조합하거나 초기에는 색타일 조각을 짜맞추는 기법이 중심이었습니다 (İznik Vakfı) (Iznik pottery - Wikipedia). 이에 따라 재료도 인도는 옥·마노·청금석 같은 광물과 대리석, 유리, 금박 등을 활용했고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터키는 석영 함유 도자기 태토로 만든 타일과 유약, 안료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İznik Vakfı) (İznik Vakfı).
색상 팔레트에서도 차이가 있는데, 무굴의 pietra dura 상감은 흰 대리석 바탕에 자연색을 지닌 원석들의 조화로운 색감(붉은색, 녹색, 파랑 등)을 특징으로 하여 비교적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면, 오스만 이즈니크 타일은 불투명한 백색 유약 위에 코발트 블루, 터쿼이즈, 진홍, 에메랄드 그린 같은 선명한 채색이 어우러져 강렬한 대비와 밝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Iznik pottery - Wikipedia).
문양 소재에도 차이가 있어, 무굴은 사실적인 꽃과 식물 표현을 즐겨 써서 개별 꽃잎의 그러데이션까지 묘사하려 한 데 비해 (Tomb of I'timād-ud-Daulah - Wikipedia), 오스만은 좀 더 양식화된 튤립·연꽃 무늬나 소용돌이치는 잎사귀(사즈 잎 모티프) 패턴을 사용하여 장식적인 반복과 리듬감을 강조했습니다 (İznik Vakfı).
용도와 배치 측면에서도 구별되는데, 무굴은 거대한 왕릉의 외벽부터 궁전 내부 벽면까지 모자이크 상감을 폭넓게 활용했고, 특히 묘건축에서는 외부까지 상감과 타일로 덮어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반면 오스만은 이슬람 예배공간의 내부 장식에 타일을 집중시켜, 신자들이 접하는 실내에만 화려함을 드러내고 외부는 비교적 담백하게 두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다만 부르사 예쉬릴 모스크 등 초기 일부 예는 외부에도 타일을 사용). 아울러 무굴 황제들은 거울 모자이크처럼 세속 공간의 향락적 장식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오스만 튤립 시대의 사치스러운 장식은 주로 정원과 공예 품에서 나타나 건축에는 비교적 덜 반영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인도 무굴과 터키 오스만의 모자이크 패턴은 이슬람 문화권이라는 공통 기반 위에 각기 다른 재료와 기법, 미적 선호에 따라 독자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두 전통 모두 정교함과 아름다움을 극한까지 추구했지만, 무굴은 “대리석 보석 세공”의 장인 정신으로 섬세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오스만은 “도자기 화병” 같은 선명한 색채미로 생동감 있고 장식적인 효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역사적·환경적 맥락—무굴 제국이 인도 토착 요소와 유럽 기법을 융합한 데 비해, 오스만 제국은 페르시아-이슬람 전통과 중국적 영향 속에서 도자 예술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두 거대 제국이 남긴 모자이크 예술은 서로 닮은 듯 다른 매력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문화유산이라 할 것입니다. (Pietra dura -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