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인턴다이어리

존경 - 외과 실습의 꽃 수술 스크럽

GAP 2008. 11. 17.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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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병원으로 "출근"인데 매일 아침 샤워까지는 안하더라도 최소한 자면서 뒤집어진 머리는 바로하고 출근하는게 예의 아니겠는가. 역시나 기숙사 샤워실은 아침에 무척 붐빈다. 급할 때는 누군가는 싱크대에서 머리를 감기도 하는데, 오늘 아침에는 그게 바로 였다. '어차피 아무도 음식 안해먹는걸' 하면서 속으로 합리화하면서 후다닥 씻는데 어느새 손을 스크럽하듯이 씻고 있다. 이제 외과 실습 6주차. 이놈의 조건반사. 아직 이 덜깬거다.

  역시나 외과 실습메인수술 스크럽(수술보조?)이 아닐까 한다. 가끔은 각 수술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의 "손 닦고와" 혹은 "손 씻고와" 한마디에 인턴 선생님과 서브인턴의 표정이 바뀌기도 한다. 실제로는 서브인턴(PK)의 쓸모가 수술도구 Kim's(세계적 위암 수술의 대가 - 고 김진복 원장님께서 만드신 견인기, 수술부위를 벌리기 위해 복벽을 잡고 있는 것 외의 기능은 없다.)만큼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큰 영광이겠다. 역시나 간단한 수술 스크럽 조차 구박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하얀거탑 수술실 MBC 드라마 하얀거탑 中 - 이런 수술실 참관방 국내에 없다. 저위에서 뭐가 보이니? 눈이 참 좋구나 ;)

"아 이놈이 구멍이네 ~. 확 쫓아내버릴까?"
"이거 이거 입장료 내고 들어왔으니 쫓아 낼 수도 없고 말이야~"
"제대로 좀 땡겨봐."

명인대 지하철 역여기에는 저런 수술방 있다 :)


 교수님의 농담반 진담반의 구박을 듣다보면,  굳이 쓸모없는 서브인턴(PK)이 수술 스크럽을 서야할까 생각도 되지만, 실제로는 뒤에서 참관하는 것보다는 스크럽을 서는 것이 훨씬 잘 보이고, 집중도 잘된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언제 사람의 살아 움직이는 장기를 직접 볼 수 있으랴. 외과의사가 아니라면 살아있는 사람의 배를 열어서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는 없고, 수술 스크럽은 외과의사의 일을 어깨넘어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이 분명하다. TV 속 국내 최고 명문 대학병원인 명인대학교, 광희대학교갤러리가 있는 수술방은 촬영 세트를 제외하면 국내에 없다. 만약 갤러리가 있는 수술방이 있다고 해도 2층에서 1층으로  얼마나 수술이 보일지는 모르겠다. 무영등 위쪽으로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지 않는다면 수술자의 등에 가려 전혀 수술이 보이지 않을 듯한데... 몸은 편하겠지만 수술은 먼나라 이웃나라이야기쯤 되겠지. 여튼, 이번주에도 어김 없이 수술 스케쥴표는 빡빡했고, 스크럽을 서기 위해서 수술실에 들어갔다.

외과 의사 봉달희 장면과는 관련없음 - SBS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中

  한국은 정기검진등을 통해 내시경을 많이하기에 위암의 발견이 빨라지게 되어(EGC 조기위암의 경우), 요즘에는 위암 수술도 복강경(Laparoscopy)으로 많이 하는 추세인데 스케쥴표에 개복 수술이 예약되어 있다. 50대 남자로 소화불량과 구토가 몇 달간 지속되어 병원에 가서 내시경과 CT 촬영을 했더니, 위 하부쪽에 위치한 진행된 위암(AGC)으로 보였다고한다. 실제로 체중감소도 있었고, CT에서 위하부쪽으로 위벽이 전체적으로 두꺼워져 있었다. 내시경으로 시행한 조직검사에서도 암(Adenocarcinoma)으로 판정되었다.

  수술 대기실로 환자가 내려왔고, 마취과 선생님의 마취설명과 동의서 작성, 그리고 여러 확인 절차가 진행되었고 환자는 수술대 위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수술은 배를 열고, 부분 위절제(subtotal gastrectomy)와 임파절(Lymphnode) 절제를 시행하고, 수술중에 육안으로 위암의 진행정도를 재평가, 조직검사를 내어 추가적 위절제의 여부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수술은 시작되었고, 배를 열어서 눈과 손으로 대장이나 다른 장기로의 전이여부에 대해서 재차 확인한다. 암은 생각보다 더 퍼져 있었다. 상황이 좋지않다. 교수님은 아래쪽에서부터 딱딱해진 위를 만지면서 어디서 절제를 해야할지 고민하신다.

"이 사람이 젊은데, 위를 조금이라도 남겨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겠지?
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훨씬 좋은 이유는 뭐지, 서브인턴쌤?"

  이러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순간에도 계획된 수술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위 주변에는 여러 림프절이 있는데 암세포가 전이되었을 만한 곳의 림프절을 모두 제거해주어야 한다. 위의 아래로 붙어있는 장막을 절제하고, 주변의 임파절(Lymphnode)을 눈과 손으로 확인하신다.

"생각보다 림프노드를 많이 먹었네."(암세포가 생각보다 많은 림프절에 퍼져 있는 것 처럼 생각된다는 말씀)

  이 환자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암 수술에서 잡는 림프노드보다 더 많은 림프노드를 절제해내야 했다. 교수님손놀림에 따라 레지던트 선생님과 수술 간호사 선생님의 손이 바쁘다.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혈관들에 매듭이 맺어지고, 위와 암세포가 퍼져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림프노드를 깨끗하게 들어내기 위한 작업이 신속히 진행된다. 손발이 딱딱이라는 말은 이런 상황에 쓰기 위해 만들어진게 아닐까? 위에서 음식물이 넘어가는 십이지장쪽을 수술용 스태이플러(surgical stapler)로 잡고, 십이지장도 꼼꼼히 매듭지어진다. 위를 들어 올려서 림프노드들을 마저 정리하신다.

Surgical stapler - http://www.ptc.com


"서브인턴쌤 저기 아래 보이는 것이 뭐지?"

 들어올려진 위 아래로 해부학 책과 카데바(해부실습용 시체)에서 보았던 구조물들이 보인다. 뱃속에 굵은 혈관이 움직이는 것이, 복부 대동맥의 맥박이 보인다. 수술대 위에 잠들어 있는 이 사람의 심장에서도 36.5도의 뜨거운 피를 쉼없이 펌프질 하고 있다. 복벽을 당겨 수술 필드를 보이게 하는 아주 단순한 작업을 하는 내 손에도 새삼 지금 하는 수술의 묵직한 무게가 느껴진다. 교수님께서는 수십년간 해오셨던 수술이지만, 아마도 이 환자에게서는 일생일대의 수술이겠지..

"서브인턴쌤 이것 좀 잡아봐"

  한쪽 끝이 잘려나간 위를 조심스럽게 만져 본다. 위암. 암. 암. 암. 이름만 들어도 무서운 암을 뱃속에서 잘라낼 시간이다. 위의 위쪽 부분으로 교수님께서 경계를 정하셨다. 수술용 스태이플러(surgical stapler)가 들어오고 조심스럽게 위를 잡는다. 두세번의 확인.

"화이어!"
"딸깍?딸깍"

 갑자기 기계가 말을 안듣는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수술이 수술용 스태이플러 때문에 갑자기 바빠지고, 교수님의 언성이 높아진다.

"아, 저놈의 기계 때문에"
"이미 인저리(손상)는 들어갔어"
"다른거 가져와"

  추가로 가져온 다른 스테이플러도 말을 듣지 않는다. 기계로 한번 경계를 잡았던 곳에는 손상이 들어갔고, 새로 경계를 잡을 때는 그보다 위쪽으로 잡아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위를 남겨주고 싶어하신 교수님은 경계가 많이 걱정되시는 모양이다. 일상적인 수술이 갑자기 바빠진다. 수술실에 있는 간호사선생님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갑작스러운 기계의 오작동에 여러가지를 준비하신다.

"오늘 왜이래? 예전 방식대로 가자"

외과 메스메스 - 출처 http://www.healthpublishing.co.uk



 예전 방식대로, 교수님께서는 수십년간 해오셨던 방식, 즉 손으로 잘려나간 위를 촘촘히 봉합하는 방법을 선택하신다. 아까 스테이플러로 잡았던 경계의 약간 위쪽과 아래쪽으로 클램프가 들어가고, 사이로 날카로운 메스가 지나가자, 위가 잘린다. 가 주르륵 흘러 나온다.

"엘리스. 코카. 엘리스. 코카."
"석션"

 잘려진 위가 들려져 나오고, 남은 부분도 들어올려지고, 순식간에 몇개의 수술기구가 위의 출혈을 잡는다. 모든 과정에 0.1초의 머뭇거림이나 주저함이 없다. 모든 것은 계산되어있던 일들이었던 것 같다. 침착, 신속, 정확 그리고 팀웍. 외과의사에게 요구되는 기본 자질들은 원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경험에 의해서 학습되어지는 것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 부분 기분나쁜데? 여기도 마저 절제하고 병리과 보내."

위가 잘려진 단면이, 세포 때문인지 경계가 지저분하다. 추가로 위 조직이 잘려 병리과로 보내지고, 남은 위는 교수님의 손놀림 앞에 순식간에 분홍색 벙어리 장갑처럼 봉합된다.

"오늘 서브인턴쌤 여러가지로 보네. 요즘에는 스태이플러로 많이 해서 손으로 잘안하는데 말이야. 허허."

 곧 병리과에서 결과가 온다. 경계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부분 위절제에서 전체 위절제를 해야하게 되었다. 좀전에 봉합했던 부분도 모두 잘라내야한다. 교수님께서 허허. 하시면서 나를 돌아보시며 말하신다.

"아까 괜히 쓸데없는 일했네. 그치? 그래도 환자의 삶의 질을 위해서 가능하면 위를 조금이라도 남겨 주는게 좋은데 말이야."
"토탈(전체 위절제) 갑니다."

 그렇게 위를 남겨주고 싶어하셨는데,,, 부분절제에서 전체절제를 하게되면 식도와 장을 이어주는 방법도 달라진다. 빌로스 방식에서 루앙와이 방식으로. 즉, 식도-공장(jejunum) 문합술과 공장-공장 문합술을 시행하게 되는 것이다. 좀전에 사용했던 것과 다른 형태의 스테이플러가 들어오고, 남은 수술도 재빠르게 시행되었다.

스크럽 인증샷 - 수술복과 장갑에 눌려진

전공의 갱의실갱의실에는 서브인턴용 사물함도 있다.


  그러는 사이 수술은 시간이 많이 경과되었다. 계속 잡아 당기고 있는 도 아프고, 슬슬 다리도 저려온다. 웬지 화장실 가고 싶은 생각도 나고, 별별 잡생각이 다 떠오른다. 허허. 이런 수술이 각 교수님마다 하루에 한두개씩, 사이사이 작은 수술도 한두개씩 있다. 수술이라는 무거운 심리적 부담감은 물론이거니와, 체력적으로 어떻게 버텨내시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와중에도 가장 중요한 것의 환자의 삶의 질이라 말씀하시니..허허. 거기에 레지던트 선생님수술은 물론 수술준비병동환자 관리까지. 이거 뭐. 슈퍼맨이 따로 없다.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수술방에 들어가봤냐고 거들먹거리는, 나는, 고작 외과 실습 6주차. 새삼 외과 의사의 거대함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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